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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
    드라마
    2024-07-02

    파친코

    Pachinko
    4.5
    감상일 2024-07-02
    국가 미국
    장르 드라마
    감독/작가 이민진/이미정(역)
    키워드 재일교포, 디아스포라

    파친코

    2018년 3월 9일 1판 1쇄

    (리뷰추가)

    좋았던 구절

    2부



    부산은 오사카와 비교하면 또 다른 세상 같았다. 바위 많은 작은 섬 영도는 선자의 기억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선하고 따사로운 곳으로 남아 있었다. 그곳에 돌아가지 못한 지 20년이나 흘렀는데도 말이다. 이삭이 선자에게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려고 했을 때 선자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자신의 고향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에서 보았던 달과 별도 이곳에서 보는 차갑기만 한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국의 상황이 나쁘다고 사람들이 불평을 해도 선자는 화기애애하고 든든했던 고향집이 그리웠다. 유리 같은 초록빛 바다 옆의 고향집에는 아버지가 잘 가꾼 수박과 상추, 호박을 심었던 윤택한 텃밭이 딸려 있었고, 고향집 근처 야외 시장에서는 맛있는 것이 많았다. 그곳에 살 때는 그곳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




    이삭은 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을 겪는지에 대해서 선자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해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견뎌낼 때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이삭이 말했다. 왜 자신은 무사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왜 자신은 이 부엌에서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걸까? 이삭은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으시다고 말하곤 했다. 선자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래도 사라진 두 자매를 생각하면 그러한 믿음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선자의 하숙집에서 일했던 두 자매는 선자의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보다 더 순진했다. 

    선자가 고개를 들자 엄마가 울고 있었다.

    “걔들은 엄마를 잃고 아버지까지 잃었데이. 내가 걔들을 더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걔들을 시집보내주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고통스럽게 사는 게 여자의 운명인갑다. 우리 여자들은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다 아이가.”


    p.13-14




    “유대인들은 종종 남다르게 뛰어난 사람들로 비추어졌고, 여자들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기가 일쑤였어요. 외부인인 한 남자가 자기 정체성을 모른다고 가정해보죠. 이 남자는 창세기에서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모세와 비슷한데……” 구로다 교수가 이렇게 말하면서 노아를 흘낏 쳐다봤지만 노아는 필기를 하느라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유대인 엄마처럼 재능 있고 도덕적인 가수 미라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동쪽으로 길을 떠나죠.” 구로다 교수는 엘리엇의 결말에 만족하는 것처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같은 인종끼리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씀이시죠? 유대인 같은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키코가 손을 들지도 않고 물었다. 아키코는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음, 조지 엘리엇은 유대인이 유대 국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숭고한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엘리엇은 그런 유대인들이 종종 부당하게 박해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들은 모두 유대 국가로 돌아갈 권리가 있어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이 나쁜 일을 당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유대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구로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곤경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게 말했다. “복잡하지만 엘리엇은 동시대인들의 생각을 훨씬 앞질러서 종교 차별 문제를 생각했죠.”

    강의실에는 학생이 9명 있었는데 노아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키코는 짜증난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어요.” 아키코가 말했다.

    “그건 지금 이 시간에 토론할 주제가 아니에요, 아키코.”

    구로다 교수는 주제를 바꾸고 싶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폈다.

    “엘리엇은 틀렸어요.” 아키코는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유대인들이 자기들 국가로 돌아갈 권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미라와 다니엘이 영국을 떠나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숭고한 정신이니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더 위대한 나라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전부 다 원치 않는 외국인들을 모두 쫒아내려는 구실에 불과해요.”

    노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키코의 이야기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아키코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노아는 다니엘의 용기와 선함을 존경했지만 엘리엇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엘리엇이 외국인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외국인들이 영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은 아키코를 경시했지만, 갑자기 노아는 다르게 생각 할 줄 알고 다른 진실을 제시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p.74-76







    작품 해설, <재일교포들의 슬픈 디아스토라>

    김성곤(서울대 명예교수/조지워싱턴대 석학교수)


    물론 아직도 보이지 않는 편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예전 같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강제 이주나 민족 이산, 즉 디아스포라 시대가 아니라, 국민/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트랜스내셔널리즘 시대이다. 해외교포들이 이민 간 나라에만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고 두 나라 모두에 충성심을 가져도 되는 시대, 즉 두 나라를 다 오가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트랜스내셔널리즘 시대인 지금, 이 소설을 국경을 넘어 낯설고 적대적인 새로운 세계에서 나름대로 운명을 개척하고 용감하게 살아나가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덮으며 12세기 유럽의 사상가 성 빅토르의 휴의 말을 떠올려본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p.393-394


    #2024리뷰 #이민진 #디아스포라

  • 5
    드라마
    2024-05-08

    불안한 사람들

    Anxious People
    5
    감상일 2024-05-08
    국가 스웨덴
    장르 드라마
    감독/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은선(역)
    키워드 군상극

    불안한 사람들

    2021년 5월 14일 초판 1쇄 발행


    (리뷰 추가)

    좋았던 구절


    이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려운지 잊어버린 사람에 한해서만 그렇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특히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인간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그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말이다.

    요즘은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많다. 취직도 해야 하고 살 집도 마련해야 하며 가정도 일구고 세금도 내고 깨끗한 속옷도 챙겨야 하고 빌어먹을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외워야 한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난장판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살아간다. 세상이 시속 320만 킬로미터로 우주를 뱅글뱅글 관통하는 동안 우리는 없어진 무수한 양말처럼 그 표면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우리의 심장은 비누와 같아서 손에 잘 쥐어지지 않는다. 긴장의 끊을 놓는 순간 금세 표류하고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받는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직업과 결혼생활과 아이들과 기타 모든 분야에서 ‘척’하는 법을 터득한다. 정상인 척, 제법 교양 있는 척, ‘원리금 균등분할상환’과 ‘물가상승률’이 뭔지 아는 척한다. 


    … 


    우리는 예전에 열대어를 키우려고 했다가 깡그리 죽인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열대어에 대해서만큼이나 없기 때문에 엄청난 책임감으로 매일 아침 벌벌 떤다. 계획도 없고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

    가끔은 껍데기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이 정말 아플 때도 있다. 공가금도 내야 하고 어른도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는 법을 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지독히 높은 일이라서 겁에 질릴 때도 있다.

    모든 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는 누구나 어떻게 하면 계속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경험이 있다. 우리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던 짓들을 가끔 저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딱 하나의 지독하게 한심한 발상. 그것만 있으면 된다.


    p.15—17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뭔가 하면 은행 강도가 성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은행 강도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은 없다.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치실을 쓰고 회의에 늦지 않고, 줄을 서고 서식을 작성하고, 케이블과 씨름하고 가구를 졸비하고,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고 전화 요금을 내고 커피 머신을 끄고 아이들 수영 수업을 잊지 않고 신청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이 우리 머리 위에 “잊어버리지 마!”와 “잘 챙겨!”로 이루어진 폭탄을 새롭게 투하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또 다른 폭탄이 위에서 쏟아질 것이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생각하거나 숨을 돌리지 않고 그냥 일어나서 그 산더미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회사나 학부모 간담회나 길거리에서 가끔 주의를 두리번거리다가, 남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것 같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는 척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들은 여러 가지를 감당할 여유가 되고 여러 가지를 잘 다룰 줄 알며 그러고도 에너지가 남아서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의 집 아이들은 모두 수영을 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p.74—75




    …하지만 어떤 사람이 무기를 들고 쭈뼛쭈뼛 들어가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히 6천 5백 크로나를 요구한다면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여러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p.78




    그들은 거의 항상 뒤늦게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는데, 다리를 건너 반대편 버스 정거장까지 달려갈 때마다 딸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큰사람이 온다! 큰사슴이 온다!” 은행을 털려고 한 부모의 다리가 쌩뚱맞게 너무 길어서 달리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그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비율을 측정하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 우리를 항상 아래에서, 그러니까 가장 안 좋은 각도에서 올려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골탕 먹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약삭빠른 꼬마 괴물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모조리 건드릴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항상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아이가 생겼을 때 가장 신기한 부분이 그것이다. 은행 강도인 부모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그렇다. 그 모든 면모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아이의 사랑을 받는다. 심지어 사람들은 나이를 한참 먹은 뒤에도 자기 부모가 완전히 똑똑하고 엄청나게 재밌는 불사신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어쩌면 거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아이가 특정 연령까지 당신을 조건 없이, 대책 없이 사랑하는 이유는 딱 하나, 당신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영리한 행동이다.

    은행 강도가 된 부모는 딸들을 절대 진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당사자들이 그 이름을 가장 쓰기 싫어 하는 것과 같은 부분들은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 전에는 절대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별명을 지어서 붙인다. 사랑하면 우리만의 단어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 강도가 된 부모는 각각 6년과 8년 전, 아직 엄마 배속에 있었을 때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발버둥 쳤는지를 근거로 딸들을 부른다. 한 아이는 배 안에서 계속 점프하는 느낌이었고 한 아이는 항상 나무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아이는 개구리, 한 아이는 원숭이다. 그리고 큰사슴은 그 둘을 위해 무엇이든 못 할 게 없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도.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바보 같은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당신의 삶에도 있을지 모른다. 


    p.90—91




    그녀는 병원에서 곧장 다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아이가 그녀를 끌어내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한 발 내디뎠을까, 뒤로 물러났을까? 그래서 그녀는 이후로 날마다 뛰어내린 남자와 자신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그걸 발판 삼아 직업과 경력과 모든 인생을 선택했다. 그녀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발을 저쪽으로 내밀고 난간에 서 있는 것처럼 괴로움에 뭄부림을 치는 사람들이었고 그녀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겪어봤어요. 나는 거기서 무사히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요.”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녀가 뛰어내리고 싶었던 이유와,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점들이 어쩌다 한 번씩 불쑥 떠오르곤 했다. 저녁 식탁에서 느낀 외로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대처하는 법, 거기서 빠져나오는 법, 내려오는 법을 찾았다. 불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무리 멍청해 보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잘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속으로는 그렇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바보들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바보라서 친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나디아에게는 그것이 평생 씨름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업이고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p.155—156




    …사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 남자와 나디아의 차이점이 뭔지 듣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고 싶지 않기는 해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긴 해도. 그녀가 나쁜 사람이기는 해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진면모를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라는 아직까지 봉투를 열지 않았다.


    전부 복잡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의 주제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일지 모른다. 예컨대 이 이야기도 은행 강도나 아파트 오픈 하우스나 인질극이 주제가 아닐지 모른다. 심지어 바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다리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p.158




    두 아이 모두 아직 같이 살던 시절, 모두들 아직 어지간히 행복했던 시절의 어느 날 저녁에 야크는 어머니에게 살릴 수도 없는 채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종을 지킬 때 그 옆에 앉아 있는걸 무슨 수로 견디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들, 코끼리를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그는 똑같은 농담을 천 번 들은 아이답게 대답했다. “조금씩 천천히요.” 그녀는 부모답게 천 번째로 박장대소했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야크는 누나를 돕지 못했다. 다리 위로 올라간 남자를 구하지 못했다.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뛰어내린다. 남은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목사는 일을 하러 출근하고 경찰도 마찬가지다. 


    p.292—293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편의 사랑 이야기다.


    p.309




    사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손을 주무르며 한문 개수를 센다. 책상은 좁고, 둘 사이에 책상이 없었다면 두 여자는 서로 그렇게 가까이 앉아 있어 불편했을지 모른다. 가끔 우리에게는 거리가 아니라 그냥 장벽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라의 움직임은 신중하고 나디아는 조심스럽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심리 상담사는 용기를 내서 말문을 연다. 

    “처음 만났을 때 저더러 공황발작이 어떤 건지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거 기억하세요? 제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좀 더 훌륭한 답을 알고 있나요?” 사라는 묻는다.

    심리 상담사는 고개를 젓는다. 사라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잠시 후에 나디아는 심리 상담사가 아닌 개인으로서, 심리학 수업에서나 다른 사람에게 대문 내용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말한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공황발작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아침에 엉망인 모습으로 출근해 ‘공황발작이 일어났어요’라고 했을 때보다 ‘술이 안깨요’라고 했을 때 동료와 상사에게 더 많은 동정표를 얻겠지만요.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길거리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고 있어요, 대다수가 그게 뭔지 모를 뿐이죠. 몇 달 동안 숨이 안 쉬어져서 폐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는 사람들. 그게 다 뭔가가…… 고장 났다는 걸 인정하기가 더럽게 어려워서 생기는 현상이에요. 영혼으로 느껴지는 고통, 혈관 속을 흐르는 보이지 않는 납덩이, 가슴을 누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돌덩이. 뇌에서 우리한테 거짓말을 하죠, 조만간 죽게 생겼다고. 하지만 폐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라. 우리는 죽지 않아요, 당신과 나는.”

    그 말이 둘 사이를 맴돌며 망막 위에서 보이지 않는 춤을 추다가 정적이 내려앉는다. 우리는 죽지 않아요. 우리는 죽지 않아요. 우리는 죽지 않아요, 당신과 나는. 


    p.456—458




    …사라는 눈을 감고 입술을 꾹 다무는데, 눈 아래 피부가 마침내 무너진다. 그녀의 공포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방울 모양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향해 떨어진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꺼낸다. 심리 상담사는 머뭇거리며 그걸 집는다. 사라는 이 편지 때문에 여길 찾아왔다고, 맨 처음에 온 그날이 그 남자가 뛰어내릴 지 딱 10년째 되던 날이었다고 속삭이고 싶다. 그가 뭐라고 썼는지 큰 소리로 읽어줄 사람, 그녀의 가슴에 불이 나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막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사라는 다리에 대해, 나디아에 대해, 그 남자아이가 달려가 그녀를 구하는 모습을 본 일에 대해 모두 속삭이고 싶다. 그 뒤로 날마다 어떤 식으로 사람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는지도. 하지만 그녀가 간신히 꺼낸 말은 이게 전부다. “나디아…… 당신과…… 나는……”


    나디아는 책상 저편에 앉아있는 연상의 여자를 끌어안고 싶지만, 안아주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라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심리 상담사는 새끼손가락을 봉투 뒷면의 안으로 넣어서 봉투를 연다. 10년 된 자필 쪽지를 꺼낸다. 적힌 단어는 네 개다.


    p.458—459




    사라는 난간 앞에 서 있다. 몸을 숙여 난간 너머를 내다본다. 딱 1초라는 찰나의 순간 동안 그녀가 뛰어내리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그녀의 모든 사연과 지난 며칠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알고 있다면…… 그녀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세상에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끝내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뛰어내리고 그럴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놓는다.


    바로 위에 서 있는데도 알고 보니 거리가 제법 멀다. 수면을 때리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가볍게 긁히는 소리, 종이를 움켜쥐는 바람, 퍼덕이고 구겨지며 수면을 가르고 점점 멀어져가는 편지. 도어매트에서 맨 처음 그 편지를 주운 뒤로 봉투를 만 번쯤 만지작거렸던 손 끝이 저항을 포기하고 그 나름의 영원을 향해 편지를 띄워 보낸다.


    10년 전에 그 편지를 보낸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적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길지도 않은 딱 네 단어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네 단어였다. 


    당신이 잘못한 아니었어요.”


    p.460—461




    …아이가 특정 나이까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자기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당신을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명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p.473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사건의 진실. 진실은 이것이 여러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정말이다. 어른이 되고 서로 사랑하며 USB 단자를 어떻게 꽂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꼭 불잡을 수 있는 것, 싸워서 지킬 것, 손꼽아 기다릴 것을 찾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친다. 모두가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다수는 타인으로 남고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삶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모르고 지낸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 인파 속에서 허둥지둥 엇갈려 지나갔지만 서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당신이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가 내가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를 스친 순간 서로 멀어졌을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거든, 오늘 하루가 끝나고 밤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심호흡을 한 번 하기 바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지 않은가.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p.478–479


    #2024리뷰 #프레드릭_배크만 #군상극
  • 5
    드라마
    2024-09-04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
    5
    감상일 2024-09-04
    국가 스웨덴
    장르 드라마
    감독/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최민우(역)
    키워드 유사가족

    오베라는 남자

    2015년 5월 20일 초판 1쇄


    (리뷰추가)

    좋았던 구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얼어붙은 땅을 발로 찼다. 적당한 말을 찾고 있었다. 다시 짧게 헛기침을 했다. 

    “당신이 집에 없으니까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베가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피곤해. 당신이 떠나 있으니까 집 안이 하로 종일 썰렁해.”

    그녀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꽃다발을 들었다.



    다시 침묵.

    그는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를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거기 서 있었다. 뭔가 할말을 더 찾고 있는 것처럼. 그는 대화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그건 항상 그녀가 담당하던 것이었는데. 그는 대개는 그냥 대답만 했다. 지금 이건 둘 다에게 새로운 상황이었다. 

    오베는 몸을 웅크리고는 지난주에 가져왔던 화초를 파낸 다음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는 새 꽃을 꽂아 넣기 전 언 땅을 조심스레 뒤집었다.

    “그 인간들이 전기 요금을 또 올렸어.” 오베가 몸을 일으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커다랗고 둥근 바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마치 그녀의 볼을 만지듯 좌우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p.53-55




    아버지가 죽은 건 오베가 막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철로에서 객차가 돌진했다. 오베에게는 사브 한 대, 마을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무너질 듯한 집, 상처 난 손목시계 말고는 딱히 남은 게 없었다. 그는 그날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게 사는 걸 멈췄다. 그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철도 회사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차를 탔다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처음 웃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p.68-69




    그래서 오베는 쫓겨나는 대신 야간 청소원이 되었다. 만약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날 아침 자기 조를 떠날 일이 결코 없었을 테고, 그녀를 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그 빨간 구두와 금 브로치와 윤기 나는 갈색 멈리도. 또한 남은 평생 동안 누군가 맨발로 그의 가슴속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될 그녀의 웃는 모습도 볼 일이 없었으리라.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p.114




    오베는 누가 차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시했다. 바지의 주름진 부분을 폈다. 백미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넥타이를 매야 했는지 걱정됐다. 그녀는 항상 그가 넥타이를 매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인 양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금도 자기를 그렇게 볼지 궁금했다. 저세상에서 만났을 때 실업자에다가 더러운 양복을 입었다고 그녀가 자기를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컴퓨터 때문에 자기가 갖고있던 지식이 변변찮은 것으로 판명 나는 바람에 천천히 물러나지도 못한, 자기 직업을 유지 못한 머저리라고 생각할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자기를 의지할 수 있는 남자로 봐줄까?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필요하다면 온수기도 고칠 수 있는 남자로.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노인네에 불과한데도 자기를 똑같이 좋아해줄까?


    p.145-146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그에게 얼굴을 들어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p.232




    스페인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품을 쩍쩍 하며 돌아다니고, 술을 마셔대고, 레스토랑에서 외국 음악을 연주하고, 한낮에 잠자리에 든다는 이유로 자기네가 제법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오베는 이중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소냐가 이 모든 것들에 푹 빠져 있어서 결국에는 오베도 별 수 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어찌나 크게 웃는지 그가 그녀를 붙들 때마다 그녀의 몸 전체가 떨리는 걸 느낄 정도였다. 오베라 해도 이런 걸 싫어할 재주는 없었다. 


    p.254-255




    소냐는 모든 걸 봤다. 그녀는 그가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그가 화를 내도록 놓아뒀다. 그 모든 분노가 어느 정도 배출구를 찾도록 놓아뒀다. 하지만 여름에 대한 부드러운 약속을 품고 다가온 5월의 어느 저녁, 그녀는 휠체어를 굴려 그에게 갔다. 나무로 만든 마루에 바퀴 자국이 생겼다. 그는 부엌 식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서 펜을 빼앗은 다음 그의 손에 자기 손을 밀어 넣은 뒤 손가락으로 그의 거친 손바닥을 꾹 눌렀다. 그의 가슴에 따스하게 이마를 기댔다. 

    “그만하면 됐어요, 오베. 편지는 더 쓰지 말아요. 당신이 쓴 이 편지를 다 집어넣을 공간이 인생에는 없어요.”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는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미소를 지었다.

    “이제 충분해요, 사랑하는 오베.”

    그러자 충분해졌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p.279-281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온갖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410-411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p.436-437




    그녀가 협탁에 놓여 있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에는 손글씨로 ‘파르바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하나의 삶 전체가 문서로 정리되어 팡리에 들어가 있었다. 인생의 결산. 맨 위에 있는 편지는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 그녀는 부엌 식탁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마치 편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파르바네가 눈물로 편지를 흠뻑 적시리라는 걸 오베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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