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리뷰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최민우 옮김
2015년 5월 20일 초판 1쇄
(리뷰추가)
좋았던 구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얼어붙은 땅을 발로 찼다. 적당한 말을 찾고 있었다. 다시 짧게 헛기침을 했다.
“당신이 집에 없으니까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베가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피곤해. 당신이 떠나 있으니까 집 안이 하루 종일 썰렁해.”
그녀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꽃다발을 들었다.
…
다시 침묵.
그는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를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거기 서 있었다. 뭔가 할말을 더 찾고 있는 것처럼. 그는 대화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그건 항상 그녀가 담당하던 것이었는데. 그는 대개는 그냥 대답만 했다. 지금 이건 둘 다에게 새로운 상황이었다.
오베는 몸을 웅크리고는 지난주에 가져왔던 화초를 파낸 다음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는 새 꽃을 꽂아 넣기 전 언 땅을 조심스레 뒤집었다.
“그 인간들이 전기 요금을 또 올렸어.” 오베가 몸을 일으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커다랗고 둥근 바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마치 그녀의 볼을 만지듯 좌우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p.53-55
——
아버지가 죽은 건 오베가 막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철로에서 객차가 돌진했다. 오베에게는 사브 한 대, 마을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무너질 듯한 집, 상처 난 손목시계 말고는 딱히 남은 게 없었다. 그는 그날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게 사는 걸 멈췄다. 그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
그는 철도 회사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차를 탔다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처음 웃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p.68-69
——
그래서 오베는 쫒겨나는 대신 야간 청소원이 되었다. 만약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날 아침 자기 조를 떠날 일이 결코 없었을 테고, 그녀를 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그 빨간 구두와 금 브로치와 윤기 나는 갈색 멈리도. 또한 남은 평생 동안 누군가 맨발로 그의 가슴속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될 그녀의 웃는 모습도 볼 일이 없었으리라.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p.114
——
오베는 누가 차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시했다. 바지의 주름진 부분을 폈다. 백미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넥타이를 매야 했는지 걱정됐다. 그녀는 항상 그가 넥타이를 매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인 양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금도 자기를 그렇게 볼지 궁금했다. 저세상에서 만났을 때 실업자에다가 더러운 양복을 입었다고 그녀가 자기를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컴퓨터 때문에 자기가 갖고있던 지식이 변변찮은 것으로 판명 나는 바람에 천천히 물러나지도 못한, 자기 직업을 유지 못한 머저리라고 생각할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자기를 의지할 수 있는 남자로 봐줄까?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필요하다면 온수기도 고칠 수 있는 남자로.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노인네에 불과한데도 자기를 똑같이 좋아해줄까?
p.145-146
——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그에게 얼굴을 들어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p.232
——
스페인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품을 쩍쩍 하며 돌아다니고, 술을 마셔대고, 레스토랑에서 외국 음악을 연주하고, 한낮에 잠자리에 든다는 이유로 자기네가 제법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오베는 이중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소냐가 이 모든 것들에 푹 빠져 있어서 결국에는 오베도 별 수 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어찌나 크게 웃는지 그가 그녀를 붙들 때마다 그녀의 몸 전체가 떨리는 걸 느낄 정도였다. 오베라 해도 이런 걸 싫어할 재주는 없었다.
p.254-255
——
소냐는 모든 걸 봤다. 그녀는 그가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그가 화를 내도록 놓아뒀다. 그 모든 분노가 어느 정도 배출구를 찾도록 놓아뒀다. 하지만 여름에 대한 부드러운 약속을 품고 다가온 5월의 어느 저녁, 그녀는 휠체어를 굴려 그에게 갔다. 나무로 만든 마루에 바퀴 자국이 생겼다. 그는 부엌 식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서 펜을 빼앗은 다음 그의 손에 자기 손을 밀어 넣은 뒤 손가락으로 그의 거친 손바닥을 꾹 눌렀다. 그의 가슴에 따스하게 이마를 기댔다.
“그만하면 됐어요, 오베. 편지는 더 쓰지 말아요. 당신이 쓴 이 편지를 다 집어넣을 공간이 인생에는 없어요.”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는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미소를 지었다.
“이제 충분해요, 사랑하는 오베.”
그러자 충분해졌다.
…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p.279-281
——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온장 뭉르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410-411
——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p.436-437
——
그녀가 협탁에 놓여 있던 봉투를 지벙 들었다. 봉투에는 손글씨로 ‘파르바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 하나의 삶 전체가 문서로 정리되어 팡리에 들어가 있었다. 인생의 결산. 맨 위에 있는 편지는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 그녀는 부엌 식탁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마치 편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파르바네가 눈물로 편지를 흠뻑 적시리라는 걸 오베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