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포스터

솔로몬의 위증

ソロモンの偽証
★★★★★
감상일 2022-07-03
국가 일본
장르 추리, 미스터리
감독/작가 미야베 미유키/이영미(역)
키워드 사회파 추리물, 군상극, 성장

리뷰

솔로몬의 위증



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옮김
2013년 6월 12일 초판 1쇄 발행

내가 좋아하는 소재: 사회파 추리, 군상극, 사춘기 시기의 풋풋하고 불안한 아이들과 성장 드라마를 다 말아주는 종합 선물 세트
내 안의 미미여사 랭킹은 영원히, 압도적으로 모방범만이 1위 자리를 지킬 줄 알았는데... 솔로몬의 위증이 모방범 아래에 만만치 않은 2위로 등록됨
사회파 추리소설 기준으로는 여전히 모방범이 1위지만... 약간 만화적인 캐릭터 구성과 후반부의 벅차오르는 감동은 솔로몬의 위증이 더 커서 진짜 그냥 둘이 다른맛으로 재밌고 이 맛을 못잊어서 영원히 신작을 외치며 울게 돼  
미미여사님 제발 시대극말고 현대장편추리물 계속 써주시면 안돼요?
좋았던 구절

1부 사건




 —그런데 알고 보면 휴가철이나 크리스마스, 명절 연휴 같은 때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대요. 우울하거나 불우한 사람에게는 자기만 빼고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게 괴롭겠죠.


p.10–11





 “잘됐다, 주리짱.”

 그 순간 분노의 절규가 주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올랐다. 거센 바람 소리와도 비슷한 그것이 주리를 포악스럽게 뒤흔들었다. 열네살 소녀의 가녀린 몸은 분노의 에너지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잘되긴 뭐가 잘돼! 잘된 건 하나도 없어! 대체 넌 왜 그걸 몰라?

 사실 나는 이런 것과 상관없이 살고 싶었다. 이런 심정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억지로 알게 된 것이다. 억지로 이런 일을 강요당한 것이다.

 주리는 더는 그 분노를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요새는 마음속에서 쉴새없이 날뛰는 분노 때문에 몸을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 투서를 쓰고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왜 분노는 편지가 우체통 바닥으로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걸까.

 핵심이 빠져 너덜너덜해진 찌꺼기 같은 목소리로 주리는 말했다. “응, 돌아가자.”


p.208–209





 하지만 지금은 신변의 안전을 지키는 게 먼저다. 이제 두 번 다시 등을 걷어차이거나 남자화장실 변기에 얼굴을 처박히지 않도록. 아래로 떨어지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아파트 계단 난간에 손을 얹고 한 시간씩 서있거나, 면도칼을 쥐고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울지 않도록.

 그리고 나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세 사람에게 합당한 보복을 해주겠다.

 그러기 위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장을 고심하고, 자와 볼펜을 놀려 완성해낸 이 고발장.

 이것은 올바른 일이다.

 왜냐하면 난 봤으니까. 정말로 봤으니까. 그래서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미야케 주리의 입술이 현실세계의 그 어떤 자로도 그을 수 없는 완벽한 직선을 그렸다. 그것은 정의와 복수 두 점 사이를 최단거리로 연결한 선, 주리만이 시작점과 끝점을 아는 직선이었다.


고발장


고토 제3중학교

2학년 A반 가시와기 다쿠야는

자살한 것이 아닙니다

살해당했습니다

학교 옥상에서 떠밀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그날

저는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가시와기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를 밀어뜨린 사람은 

2학년 D반의 오이데 슌지입니다

하시다 유타로와 이구치 미쓰루도 거들었습니다

세 사람은 웃으면서 도망쳤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사건을 조사해주십시오

이대로는 가시와기가

너무 불쌍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경찰에 알려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p.220–221


->하 ㅁㅊ주리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맨첨에 읽을땐 헐대박ㄷㄷ대존잼 이러면서 후루룩 읽던 파트가 나중에 너무 아픈손가락 돼서 내가진짜ㅠㅠㅠㅠㅠ








2부 결의




 “사건에 대한 흥미라고 하면 안 될까요?”

 “거짓말 마. 넌 그런 구경꾼이 아니야.”

 “해결하고 싶은 야심, 혹은 공명심?”

 가즈히코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타오 선생이 피식 웃었다.

 “그런게 있긴 하냐? 그 다음은?”

 “멋지잖아요?”

 “누구한테 보여주고요. 누구야? 역시 후지노?”

 “왜요, 후지노 귀엽잖아요.”

 기타오 선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 정말 그애가 마음에 없나보구나. 그런 와 닿지도 않는 소리를 잘도 하는 걸 보니.”

 그 말에는 겐이치도 동의할 수 없었다. “후지노가 못생겼다는 뜻이에요, 선생님?”

 “그런 뜻이 아니야. 물론 예쁘지. 크면 더 예뻐질 테고. 하지만 귀엽진 않아. 귀염성이 없어.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여자애는 아니야.”

 아아, 그런 뜻이라면 알겠어요. 가즈히코가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불끈 쥔 겐이치의 주먹이 갈 곳을 잃었다. 난 후지노가 귀여운데.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용감하다. 용기를 쥐어짜내는 그애의 모습이 귀엽다.


p.321–322


-> ^_____^ 좋아하는 여자애의 모든 면모가 다 좋아서 난 귀여운데. 하는 풋풋한 첫사랑이 너무 귀여워... 그치만 선생님은 애들앞에서 뭔말을 하시는거죠?





 —정말 하는구나.

 겐이치의 가슴이 술렁거렸다. 한편으로 왠지 차가운 긴장감도 느껴졌다. 체육관이 법정이 된다. 그곳에 오이데 슌지가 피고로 선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발걸음을 늦추며 불쑥 말했다.

“만약 유죄 평결이 나오면 우리 피고인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한번 생각해둬야 하지 않아?”

 가즈히코가 걸음을 멈췄다. 한낮의 열을 머금었다가 후텁지근한 기운을 피워올리는 아스팔트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던 겐이치는 그를 앞지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우리끼리 생각하는 것보다.”

 가즈히코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커다란 태양은 두 사람의 등뒤에 있는데도 눈이 부신듯이 실눈을 떴다.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지.”

 겐이치의 집 앞 길가에 오이데 슌지가 서 있었다. 색상도 무늬도 화려한 티셔츠에 후줄근한 청바지. 비치샌들을 꿰신고 양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상반신을 흐느적거리며 딴 데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밑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해질녘이라 그림자는 이미 옅어졌지만, 오히려 슌지는 그 그림자에 모든 힘을 빼앗긴 듯 훨씬 연약해 보였다.

 “기껏—찾아와줬더니만.”

 가즈히코는 말이 없었다. 겐이치도 마찬가지였다.

 오이데 슌지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엉덩이에 손을 문질렀다. 얼굴은 여전히 딴 데를 보고 있다.

 “나는.”

 가즈히코는 기다렸다. 겐이치도 마찬가지였다.

 “내 결백을 입증할 거야.”

 내 결백을 입증할 거야. 아마 오이데 슌지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게 입 밖에 낸 말이리라.

 “그러기로 결심했어.”

 순지가 고개를 들었다. 눈 밑이 반짝거렸다. 이마도 빰도 턱 끝도. 물론 이런 길가에 오래 서 있으면 땀범벅이 되게 마련이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할 거야.”

 내 재판을.

 “그러니까 부, 부, 부탁해.”

 고개를 숙이고, 불끈 쥔 주먹을 코에 대고, 오이데 슌지가 말했다.

 “응.”

 맥빠질만큼 순순히, 간단하게, 간바라 가즈히코가 대답했다.

 “잘 알았어.”

 가즈히코가 먼저 오른손을 내밀고 슌지가 머뭇머뭇 그 손을 잡았다. 조수 노다 겐이치는 석양빛 아래 악수를 나누는 변호인과 피고인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싸우자.


p.644–645





 “—너무해.”

 소인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뒷면에 휘갈긴 전단지는 두말 할 것 없이 우편함에 직접 넣고 간 것이리라.

 “엄마가 숨겨놨어.”

 “그랬구나.”

 주리의 눈이 새빨갰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오늘 발견했어.”

 숨길거면 차라리 버리지. 료코는 버럭 화가 났다. 저 어머니 성격으로 보아 증거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고소할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보고 울었구나.”

 계속 울었구나, 미야케.

 “도망치면.”

 주리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거짓말쟁이가, 돼버려.”

 그러니 재판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어.”

 나도 봤어, 라고 말했다.

 “마쓰코랑 같이, 나도 봤다고.”

 자꾸 뭐가 목에 걸리는 듯 주리는 애처로울 정도로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무서워서, 말 못 했어. 그렇지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 정말로, 있었어. 정말로, 봤어.”

 듣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있었어. 정말로 봤어. 그 고백이 료코를 때리고, 료코를 뒤흔들었다.

 검사로서 진즉 알아차렸어야 했던 것을 료코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픈 심정은 미야케 주리도 마찬가지다. 오이데 슌지나 모리우치 선생과 마찬가지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라고.

 사건 초반부터 주리가 고발장을 썼다는 소문만 나돈 게 아니었다. 주리는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그 두 가지는 늘 한 세트였다. 엉터리 고발장을 꾸며낸 거짓말쟁이 미야케 주리.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항변할 기회가, 주리에게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회야말로 교내재판 법정에서 주어져야 한다.

 “—목소리가, 나오면, 직접 말할 수 있어.”

 힘겹게 말하는 주리에게 후지노 료코는 크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지만.”

 목소리가 갈라지며 힘을 잃었다.

 “후지노, 넌 , 날 안 믿잖아.”

 주리가 가까스로 눈길을 들어 료코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어. 날, 믿는다고.”

 료코는 목속의 피가 서서히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피가 가라앉고 그 자리로 따뜻한 피가 흘러들었다.

 그렇다,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미야케를 믿는다고. 고발장 내용을 믿는다고. 

 “미안해.”

 그 말 또한 피가 흘러나오듯 료코의 몸에서부터 새나왔다.

 “난 자신이 없었어—“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어떻게하면 주리에게 전할 수 있을까.

 “미야케, 왜 목소리가 돌아왔을 것 같아?”

 주리가 의심쩍은 듯 실눈을 떴다.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료코는 흩어진 편지와 전단지를 집어들고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비난당하는 게 분하고 슬프고 화가 나서, 되받아 치고 싶어져서 그래. 자기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어져서 그래.”

 그래, 맞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그걸 믿는다.

 “난 그 마음을 믿어. 처음에는 나도 확신하지 못했어. 내가 과연 검사같은 걸 해낼 수 있을지 불안했어. 그렇지만 재판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알게 됐어.”

 내가 서야 할 자리를. 눈을 두어야 할 곳을.

 진실은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 

 “나는 이 사건의 검사야. 그리고 널 믿어.”

 스테레오 오디오에서 아름다운 소프라노 독창이 울려퍼졌다. 

 주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몸 전체를 울리는 놀라우리만큼 굵은 소리였다. 이거다. 이렇게 해서 주리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공포를, 분노를, 절망을 쏟아내기 위해.

 긴 침묵을 깨고 주리가 내뱉은 비명을 받아줄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껏 아무도 하려 들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나, 후지노 료코다.


p.663–665


->사랑해............... 윗 발췌본이랑 이거랑 둘 다 같은 감상임. 같은 진영에서 싸워야 하는 입장임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던 아이들이 마음의 둑을 허물고 서로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니 너무 아름다워..........








3부 법정




 오늘 아침 소동을 가장 유쾌하게 넘긴 것은 이노우에 가족이었다. 다급하게 취재를 시작한 미디어 관계자들에게도 판사의 당당한 모습에 감탄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수없이 모여든 참이었다.

 그들에게 맞선 것은 야스오의 아버지였다. 계속 울려대는 전화와 인터폰에 분통이 터진 그가 “내가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마”라고 선언하자, 아내와 딸과 당사자인 아들이 만류했다.

 “아버지가 할 바엔 내가 하는 게 이치에 맞아.”

 야스오는 그렇게 주장했다가 수면 부족인 누나에게 꿀밤을 맞았다.

 결국 누나의 제안으로 택시를 집 앞까지 불러 가족이 다함께 등교했다. 사정을 모르는 운전기사는 놀라면서도 베테랑다운 능숙한 솜씨로 뒤따라오는 기자와 리포터를 따돌렸다.

 “수상이 된 기분이군.” 야스오의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취재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어.”

 “취재 열기는 무슨.” 야스오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나저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네. 내 배에서 어떻게 야스오 같은 아이가 나왔나 신기했었는데. 야스오 너한테 내 유전자는 안 갔나보다. 전부 아빠 유전자야.”

 “그래서 머리가 좋다는 거야?”

 누나의 질문에 어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이렇게 별나다는 거지.”

 “동의 못 해.”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말했다.


p.421–422





 어린아이들 미성년자들, 일방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할 권리가 있다. 어떤 사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인이 주위에 알리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저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료코는 다카기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를 떠올렸다. 만약 그때 엄마 구니코가 거세게 항의하지 않았다면, 발끈한 다카기 선생님도 나쁘지만 선생님에게 반항한 너도 나쁘다며 참으라고 했다면, 내신서에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되도록 원만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스이 노조무도 마찬가지다. 그애는 줄곧 부당한 인내를 강요당했다. 부모님이 그애를 위해 내린 결정일지라도 본인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 배려는 잘못된 것이다. 합의했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건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의 주장이다.


p.423–424





 “두번째는 이처럼 명쾌하지 못한 케이스입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을 당한 상대나 혹은 그에 영향을 받은 불특정한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고 만 경우입니다. 이 ‘어쩌면 ㅇㅇ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의지를 ‘미필적 고의’라 하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고 말았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의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p.458





 “고발장을 쓴 사람은 보지도 않은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았던 일을 있었다고 주장하며 피고인을 고발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변호인은 반복했다.

 “그 사람에게는 이것이 천재일우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장난을 즐기는 피고인이라는 인간을, 장난으로 서슴없이 남에게 상처 주는 인간을, 장난으로 남의 인격과 존엄을 파괴하기를 즐기는 인간을 학교에서—조토 제3중학교라는 하나의 사회에서 쫓아버릴 더없이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변호인이 물었다. 이 규탄이 형식적으로나마 질문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수사적인 물음을.

 “피고인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피고인을 함정에 빠뜨릴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피고인에게 상처받고 피고인을 원망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고발장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즉, 고발장을 쓴 것이 누구인가라는 의문은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게 누구든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 방청석이 술렁였다. 줄지어 앉아 있던 사람들의 물결이 허물어졌다. 뒤를 돌아본 료코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벌떡 일어섰다.

 미야케 주리다. 기절했는지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널브러진 것이다.


p.474–475





 교내재판 관련자들은 예기치 않게 주어진 휴일을 각각 다른방식으로 보내고 있었다.

 배심원장인 다케다 가즈토시는 집 근처 공원에 딱 하나 있는 낡은 농구 골대 아래서 아침부터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휴일의 텅 빈 파란 하늘에 여름 끝자락의 소나기 구름이 떠 있었다.


p.500–502





 “그럼 다케다 배심원장에게 묻겠습니다. 평의 결과, 배심원단은 누가 가시와기 다쿠야 군을 상해했다는 결론을 냈습니까?”

 다케다 배심원장은 의연하게 얼굴을 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가시와기 다쿠야 군입니다.”

 료코는 제 귀를 의심했다. 방청석의 웅성거림이 커지고 판사가 “정숙!” 하고 소리쳤다. 

 노다 겐이치는 떨고 있었다. 간바라 가즈히코는 고개를 들어 넋을 놓고 키다리 배심원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건은 가시와기 다쿠야 군에 의한, 가시와기 다쿠야 군 살해사건 입니다. 저희는 가시와기 다쿠야 군이 미필적 고의의 살의에 의해 가시와기 다쿠야 군을 살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죽어버리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어버리긴 아쉽다. 그렇게 생각했다. 죽어버리면 편할 텐데.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짓을 하면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얼어붙은 옥상 철조망 너머에서.

 “가시와기 군이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는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을 겁니다.”

 배심원장의 목소리가 차츰 안정을 찾았다.

 “좀더 일찍 가시와기 군의 갈등이 해소되도록, 고민이 덜어질 수 있도록 누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저희도 포함해서요.”

 오이데 슌지의 어머니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슌지는 여전히 새빨간 얼굴로 단단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농구부에 들어오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했고요.”

 방청석 한쪽에서 누군가가 봄날의 새가 지저귀듯 웃었다.


p.663





 “본 법정은 피고인 오이데 슌지 군에게 무죄 평결을 내립니다.”

 8월 20일, 오후 여섯시 십일분.

 “이것으로 교내재판을 폐정합니다.”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리 높게 의사봉이 땅 울렸다.


 후지노 료코의 눈앞으로 사람들이 흘러갔다.

 울고 있는 건 가시와기 고코다. 다쿠야의 어머니. 남편과 다쿠야의 형, 남겨진 또 한 명의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법정을 나갔다.

 방청석 한가운데는 모기 에쓰오가 도전적인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료코의 시선이 그에게서 멈추자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끝났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이데 슌지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몸의 힘이 빠진 듯 앉아있는 간바라 가즈히코에게 돌아서더니 난데없이 멱살을 움켜쥐고 일으켜 세웠다.

 주위 사람들이 숨을 삼키는 가운데 슌지는 가즈히코를 밀치더니 그의 멱살을 쥐었던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몇 번씩 문질러 깨끗이 닦아내고는 불쑥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간바라 가즈히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만 흔들렸다. 오이데 슌지의 새빨간 얼굴—그 뺨이 젖은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슌지는 줄곧 울음을 참아왔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노다 겐이치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악수를 마치자 슌지는 고개를 돌리고 물러났다. 어머니가 그 뒤를 따르면서 변호인과 변호인 조수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간바라와 노다에게 다가가는 저 양복 입은 남자는 누굴까. 아아, 곤노 변호사다. 가즈히코의 어깨를 두드리고, 겐이치의 어깨도 두드렸다. 그리고 뭐라 말을 걸었다. 주위가 시끄러워서 무슨 말인지 들리지는 않았다.

 곤노 변호사는 웃는 얼굴이었다. 다시 가즈히코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머리를 헝클러뜨리듯이 쓰다듬었다. 

 또 한 사람,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료코가 모르는 얼굴이다. 아, 가슴에서 변호사 배지가 반짝거린다. 풍채가 좋은 중년 남자고 머리칼은 반백이다. 웃는 낯으로 양팔을 펼쳐 두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제 자식을 끌어안듯 품에 안았다. 그리고 곧 쑥스러운 듯 떨어져 머리를 긁적이고는 곤노 변호사와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료코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눈을 수없이 깜박거리며 앞에서 흘러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가즈미가 팔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고로가 뭐라고 말했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지? 어, 가와노 탐정 아저씨잖아. 오늘도 오셨네. 뭐야, 저렇게 기뻐하는 표정을 다 짓고.

 우리가 졌는데.


p.664–666





변호인 측이 법정을 떠났다. 재판은 끝났다. 간바라 가즈히코는 조토 3중학교를 떠나간다. 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많은 것을 잃고, 상처를 받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시작해야 할 그의 인생으로 돌아간다.

 그가 돌아서며 료코 쪽을 보았다.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말은 아무것도.

 사과했다.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후지노의 승리야.

 하지만 너도 지진 않았어. 료코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시야에서 간바라 가즈히코의 모습이 사라졌다.

 료코는 눈을 감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을 법정의 공기를 가슴 가득 빨아들였다.

 그리고 토해냈다. 재판은 끝났다.

 이제 곧 여름도 끝난다.


p.667





2010년 봄

 “뭐든 얘기해드릴 수 있어요.” 겐이치가 말했다. “어떤 얘기든.”

 겐이치가 우에노 교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교장이 살짝 눈이 부신 표정을 지었다.

 “그 말만으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네요.”

 겐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재판이 끝나고 저희는.”

 가장 적당한 말을 찾으며 겐이치는 교장실 창에 비쳐드는 봄 햇살로 눈을 돌렸다.

 “—친구가 되었습니다.”

 각자 가는 길은 다르지만, 지금도 친구다.

 그리고 노다 겐이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긴 여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친구들과의 발자취를.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요.

 나는 조토 제3중학교로 돌아왔다.

 이제 그 여름은 아득하다.


p.674–675



->너무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였어요..................... 





페이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