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포스터

아킬레우스의 노래

The Song of Achilles
★★★★★
감상일 2023-10-20
국가 미국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작가 매들린 밀러/이은선(역)
키워드 그리스 로마 신화

리뷰

필사/ 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이은선 옮김

2018년 3월 26일 초판 1쇄 발행


번역을 통해서도 절절하게 전해지는 문장력이 너무 아름다워... 사실 첫 문단보고 반해서 집어온거라 로맨스 장르인것도 몰랐다가 둘의 사랑이 너무 먹먹하고 간질간질해서 심장뜯으면서 봤음

그리고 매들린 밀러가 묘사하는 인외가 너무 좋아 압도적이고 아름답고 다른 차원에 사는 것 같은 분위기 이게 신이지bbb

좋았던 구절

— 


그는 결혼식 전날까지 그녀가 살짝 모자란 여자라는 걸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결혼식 당일까지 딸의 얼굴을 철저하게 베일로 감추었기 때문인데 나의 아버지는 토를 달지 않았다. 못생겼다 한들 여자 노예도 있고 남자 시종도 있었다. 마침내 베일을 벗겼을 때 어머니는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모자란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 세상에 웃는 신부는 없었다.


p.9


-> 첫 문단을 읽자마자 바로 덮고 빌려왔다. 결혼식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신선함과 동시에 그 시대 여성의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콱 박히는 느낌이라... 그리고 문장의 리듬감? 흐름 같은게 너무 좋아




“이제 네 차례야.”

나는 벅찬 가슴을 안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할 수 없었다. 내 연주 대신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면 평생이고 할 수 없었다. “네가 해.” 내가 말했다.


p.51




“오래전부터 아킬레우스 너에게 여러 동무를 권했지만 너는 번번이 거절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

나도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왕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왜 나를 구제하러 나선 걸까? 펠레우스와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놀랍기 때문입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그 하나 뿐이었다.

“놀랍다.” 펠레우스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네.” 나는 추가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아킬레우스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p.53-54




창 밖으로 보았던 매.

앞니가 삐딱했던 아이.

저녁 식사.

같이 수영이나 놀이나 대화를 하다보면 어떤 감정이 찾아왔다. 가슴속에서 점점 부풀어올라 나를 가득 채운다는 점에서는 거의 공포와 비슷했다. 순식간에 찾아온다는 점에서는 거의 눈물과 비슷했다. 하지만 공포나 눈물은 아니라서 그 둘이 무겁다면 이건 둥둥 떠다녔고, 그 둘이 칙칙하다면 이건 밝았다. 예전에도 만족감은 물수게비뜨기나 주사위 놀이나 몽상처럼 나 혼자 재미있는 일을 할 때 찰나처럼 맛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가 있다는데서 느낀 만족감이었다기보다 뭔가가 없다는 데서, 두려움을 벗어났다는 데서 느낀 만족감이었다. 일단 근처에 아버지나 다른 아이들이 없어야 했다. 배가 고프거나 피곤하거나 아프지도 않아야 했다. 

이 감정은 달랐다. 나는 볼이 아프고 머리 가죽이 따끔거려서 이러다 떨어져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혓바닥은 자유로움에 들떠서 내 통제 범위를 이탈했다. 나는 그에게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았다. 말이 너무 많은 건 아니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너무 마른 건 아닌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그에게 물수제비 뜨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는 내게 나무 깎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에도 온 몸의 모든 신경을 느낄 수 있었다.


p.68-69




그녀는 나보다 키가 컸다. 내가 그때까지 만났던 어떤 여자보다도 더 컸다. 까만 머리는 풀어서 등뒤로 늘어뜨렸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살결은 달빛을 흡수하기라도 한 것처럼 믿기지 않을 만큼 창백했다. 그녀가 워낙 가까이 있어서 짙은 밤색 꿀 냄새와 섞인 바다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 감히 쉴 수가 없었다. 

“네가 파트로클로스로구나.” 나는 거칠고 귀에 거슬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파도에 돌이 갈리는 소리가 아니라 낭랑한 종소리일 줄 알았던 것이다.

“네, 여신님.” 

혐오의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녀의 눈은 인간과 달랐다. 가운데까지 까말고 금가루가 박혀있었다. 나는 차마 그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신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내 뺨에 닿는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지만 전혀 따뜻하지 않고 심해처럼 냉기가 돌았다. 알겠느냐? 그는 그녀가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네.”

“좋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혼잣말처럼 무심하게 덧붙였다. 

“너는 금새 죽을 거다.”

그녀가 몸을 돌려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자 뒤로 잔물결 하나 남지 않았다.


p.74-75




잠시 후 아킬레우스가 리라를 뜯었고 케이론과 나는 그의 연주를 들었다. 어머니의 리라였다. 그가 여기까지 들고 온 것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걸.” 산에서 보낸 첫날에 그가 리라를 보여줬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리라랑 헤어지기 싫어서 하마터면 눌러앉을 뻔했는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를 어디든 따라다니게 만들 방법을 알았네.”

펠리온의 산등성이 아래로 해가 저물었고 우리는 행복했다.


p.113




“케이론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테티스가 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를 번개처럼 환히 빛내며 공터 끝머리에 서 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드레스가 생선 비늘처럼 어른거렸다. 내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될 텐데.” 그녀가 말했다. 삐죽삐죽한 바위에 선체가 긁히는 듯한 소리였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오자 그녀에게 밟힌 풀들이 시드는 듯했다. 그녀는 바다의 님프였으니 육지의 생물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p.115


-> "그녀가 앞으로 걸어오자 그녀에게 밟힌 풀들이 시드는 듯했다. 그녀는 바다의 님프였으니 육지의 생물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진짜 소름끼치게 좋음 매들린 밀러가 묘사하는 인외가 너무좋아




“저는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케이론의 까만 눈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너는 전사로 이름을 날릴 일은 없을거다. 내 말이 충격적으로 느껴지느냐?”

그의 말투는 담담했고 덕분에 아픔이 덜했다. 

“아뇨.”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p. 120-121




“후회해?” 그가 단숨에 물었다. 

“아니.” 내가 말했다.

“나도.”

정적이 흘렀고 나는 축축해진 돗짚자리나 땀범벅인 내 몸이 더이상 신경쓰이지 않았다. 금색이 점점이 박힌 그의 초록색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내 안에서 부풀어오른 확신에 목이 메었다.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그가 날 내치지 않는 한 영원히 이렇게 있을 테다.

그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있었다면 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커져가는 그 진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단어가 없었다.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쳐다볼 필요도 없었다. 가느다랗고 꽃잎 모양으로 혈관이 흐르며, 튼튼하고 빠르고 절대 틀리는 법이 없는 그의 손가락은 내 기억에 새겨져 있었다. 

“파트로클로스.” 그가 말했다. 전부터 그가 나보다 말주변이 좋았다.


p.134-135




어쩌면 그렇게 순진하냐고 나무라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는 남의 말을 너무 쉽게 믿었다. 살아오면서 두려워하거나 의심 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와의 우정이 싹트기 전에 그것 때문에 그를 증오하다시피 했는데 꺼져 있던 불씨가 내 안에서 되살아나서 불타오르려고 했다. 누구라도 테티스의 속셈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 가시 돋친 말들이 입안에서 따끔거렸다.

그런데 그 말들을 내뱉으려 해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수치심으로 볼이 벌게졌고 눈 밑에 그늘이 졌다. 남을 잘 믿는 성격은 손이나 경이로운 발처럼 그를 이루는 일부였다. 그리고 나는 상처를 받긴 했지만 그런 성격이 사라져서 그가 남들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지내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p.176-177




“그것 때문에 너의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다.”

“갈 테면 가라지.” 그는 고집스럽게 턱을 내밀었다. “그런 걸로 나의 명예가 흔들리도록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멍청한 거야.”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그는 봄을 맞은 나뭇잎처럼 푸른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파트로클로스. 그들에게 양보할 만큼 했잖아. 이건 양보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p.229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가 잠이 들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너랑이지. 너랑 아이를 갖고 싶은 거지.” 

나의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일어나서 앉자 덮었던 담요가 가슴에서 떨어졌다. “지금 임신했어?” 그가 물었다. 

여태껏 들어본 적 없었던 긴장한 말투였다.

“아니.” 내가 말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빛을 이리저리 살폈다. 

“너는 그러고 싶어?” 그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힘들어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질투심은 그에게 낯선 감정, 이질적인 감정이었다. 그는 상처를 받았는데 그걸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낸 내가 문득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괜찮아.” 내가 말했다.

안도하는 그의 표정이 나를 달콤하게 채웠다.


p.343




마침내 그가 말을 꺼낸다. 졌다는 듯이 지친 목소리다. 나에게 화를 내는 방법을 자기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불이 붙지 않는 축축한 나무와도 같다. 


p.375-376




파트로클로스. 위에서 노랫가락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위를 올려다보니 까만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남자가 화살통과 활을 대충 가슴에 걸고 일광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성벽에 기대고 서 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살짝 미끄러지고 그 바람에 바위에 무릎을 긁힌다. 그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반질반질한 피부와 깎아놓은 듯한 얼굴이 초인간적인 광채로 빛난다. 까만 눈. 아폴론이다

그는 내가 알아봐주기만을 바랐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p.421-422


-> 매들린 밀러가 묘사하는 인외가 너무좋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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