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포스터

파친코

Pachinko
★★★★⯨
감상일 2024-07-02
국가 미국
장르 드라마
감독/작가 이민진
키워드 재일교포, 디아스포라

리뷰

파친코


이민진

이미정 옮김

2018년 3월 9일 1판 1쇄


(리뷰추가)

좋았던 구절

2부


부산은 오사카와 비교하면 또 다른 세상 같았다. 바위 많은 작은 섬 영도는 선자의 기억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선하고 따사로운 곳으로 남아 있었다. 그곳에 돌아가지 못한 지 20년이나 흘렀는데도 말이다. 이삭이 선자에게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려고 했을 때 선자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자신의 고향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에서 보았던 달과 별도 이곳에서 보는 차갑기만 한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국의 상황이 나쁘다고 사람들이 불평을 해도 선자는 화기애애하고 든든했던 고향집이 그리웠다. 유리 같은 초록빛 바다 옆의 고향집에는 아버지가 잘 가꾼 수박과 상추, 호박을 심었던 윤택한 컷밭이 딸려 있었고, 고향집 근처 야외 시장에서는 맛있는 것이 많았다. 그곳에 살 때는 그곳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





이삭은 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을 겪는지에 대해서 선자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해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견뎌낼 때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이삭이 말했다. 왜 자신은 무사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왜 자신은 이 부엌에서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걸까? 이삭은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으시다고 말하곤 했다. 선자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래도 사라진 두 자매를 생각하면 그러한 믿음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선자의 하숙집에서 일했던 두 자매는 선자의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보다 더 순진했다. 

선자가 고개를 들자 엄마가 울고 있었다.

“걔들은 엄마를 잃고 아버지까지 잃었데이. 내가 걔들을 더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걔들을 시집보내주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고통스럽게 사는 게 여자의 운명인갑다. 우리 여자들은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다 아이가.”


p.13-14





“유대인들은 종종 남다르게 뛰어난 사람들로 비추어졌고, 여자들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기가 일쑤였어요. 외부인인 한 남자가 자시 정체성을 모른다고 가정해보죠. 이 남자는 창세기에서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모세와 비슷한데……” 구로다 교수가 이렇게 말하면서 노아를 흘낏 쳐다봤지만 노아는 필기를 하느라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유대인 엄마처럼 재능 있고 도덕적인 가수 미라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동쪽으로 길을 떠나죠.” 구로다 교수는 엘리엇의 결말에 만족하는 것처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같은 인종끼리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씀이시죠? 유대인 같은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키코가 손을 들지도 않고 물었다. 아키코는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음, 조지 엘리엇은 유대인이 유대 국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숭고한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엘리엇은 그런 유대인들이 종종 부당하게 박해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들은 모두 유대 국가로 돌아갈 권리가 있어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이 나쁜 일을 당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유대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구로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곤경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훨씬 조용하게 말했다. “복잡하지만 엘리엇은 동시대인들의 생각을 훨씬 앞질러서 종교 차별 문제를 생각했죠.”

강의실에는 학생이 9명 있었는데 노아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키코는 짜증난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어요.” 아키코가 말했다.

“그건 지금 이 시간에 토론할 주제가 아니에요, 아키코.”

구로다 교수는 주제를 바꾸고 싶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폈다.

“엘리엇은 틀렸어요.” 아키코는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유대인들이 자기들 국가로 돌아갈 권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미라와 다니엘이 영국을 떠나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숭고한 정신이니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더 위대한 나라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전부 다 원치 않는 외국인들을 모두 쫒아내려는 구실에 불과해요.”

노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키코의 이야기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아키코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노아는 다니엘의 용기와 선함을 존경했지만 엘리엇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엘리엇이 외국인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외국인들이 영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은 아키코를 경시했지만, 갑자기 노아는 다르게 생각 할 줄 알고 다른 진실을 제시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p.74-76






작품 해설, <재일교포들의 슬픈 디아스포라>

김성곤(서울대 명예교수/조지워싱턴대 석학교수)


물론 아직도 보이지 않는 편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예전 같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강제 이주나 민족 이산, 즉 디아스포라 시대가 아니라, 국민/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트랜스내셔널리즘 시대이다. 해외교포들이 이민 간 나라에만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고 두 나라 모두에 충성심을 가져도 되는 시대, 즉 두 나라를 다 오가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트랜스내셔널리즘 시대인 지금, 이 소설을 국경을 넘어 낯설고 적대적인 새로운 세계에서 나름대로 운명을 개척하고 용감하게 살아나가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덮으며 12세기 유럽의 사상가 성 빅토르의 휴의 말을 떠올려본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p.39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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